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시비스 전투 (문단 편집) == 이후 경과와 의의 == 이걸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문제는 마크리누스가 맺은 협정이 사실상 로마군의 패배를 알리는 굴욕적인 협상이다 보니 로마 제국 내에서 반발이 심했다.[* 특히 로마는 파르티아보다 압도적인 국력을 가졌는데, 이런 협정을 맺은 자체가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특히 파르티아를 상대로 로마가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할 수 있었는데도, 정적들을 족친다고 그런거 신경 안 쓰고 했으니, 오히려 정적들에게 마크리누스를 족칠 명분을 제대로 준 셈이었다. 게다가 로마군이 패배했다면 모를까, 카라칼라가 암살당하고 휘하 지휘관들의 수준이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파르티아군에게 끝까지 밀리지 않았으며, 마크리누스가 제위 욕심에 [[뻘짓]]만 안 했다면 또 카라칼라가 이미 죽은 뒤이므로 이런 기막힌 협정을 맺을 이유가 없었다.] 특히 마크리누스가 맺은 굴욕적인 강화협상의 내용이 알려지자 그의 인기, 특히 군인들 사이에서의 인기가 급락했다. 그 틈을 타 선제 카라칼라의 이모인 율리아 마이사가 손자인 [[엘라가발루스]]를 카라칼라의 핏줄이며 적법한 후계자라고 내세웠다. 결국 엘라가발루스가 황제로 즉위하자 귀족들과 군인들이 모두 지지했고, 마크리누스는 제대로 맞서지도 못한 채 도망치다가 붙잡혀 죽음을 맞았다. 다만 굴욕적인 협상이라 해도 파르티아를 조지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인지, 로마는 그 뒤 더 이상 파르티아를 공격하지 않았다. 사실상 승리한 쪽인 아르타바노스 4세의 운명 역시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사실 굴욕적인 협상을 해서 그렇지 로마는 이 전쟁에서 파르티아를 거의 거덜냈기 때문에 목표는 확실하게 달성했다. 게다가 들판에 시체가 즐비하다는 서술도 대부분은 파르티아군이었다. 로마군이 중보병 위주로 방어전을 펼쳤고 대열이 붕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중보병 부대는 협상이 굴욕적인(?) 덕택인지는 모르나 무사히 철군해서 전원 방위선에 합류했기 때문에 동방 군단의 대부분이 건재했고, 파르티아군은 엄청난 병력 손실까지 입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의 영토로 쳐들어갈 여력이 없었다. 이렇게 파르티아의 중앙 권력이 제위 계승 문제와 로마와의 전쟁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이, 남쪽 [[파르스]] 지방의 [[아나히타]] 여신 숭배 사제 집안이었던 사산 가문이 점차 주변 지역을 공략하면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아르타바노스 4세는 사산 가문의 바바크(Papak)가 자기 아들인 샤푸르(Shapur)를 파르스 지역의 부왕(副王)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거절했고, 샤푸르의 형제인 아르다시르가 왕위에 오르자 후제스탄의 부왕으로 하여금 그를 공격했다. 하지만 아르다시르가 승리하자 직접 군대를 이끌고 파르스로 쳐들어갔으나, 세 차례의 격전 끝에 결국 [[역관광]]을 당하고 전사했다. 이로써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 제국은 멸망하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이 새로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상의 경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니시비스 전투의 가장 큰 수혜자는 사산 가문과 [[아르다시르 1세]], 엘라가발루스라 봐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로마에 대해 수세적인 입장에 있었던 파르티아와 달리 사산 왕조의 시조인아르다시르 1세와 그의 아들 샤푸르 1세는 적극적인 대 로마 공세에 나섰다.[* 왜냐하면 봉건제라서 왕권이 매우 약한 파르티아와 달리 사산 왕조는 중앙집권에 꽤 공을 들여 왕권이 파르티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즉, 사산 왕조는 파르티아보다 장기전에서 싸우기에 더 좋은 정치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결국 로마군이 이들을 격퇴하긴 했지만, [[에데사 전투]]에서 엄청난 참패를 당하고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사로잡히는 굴욕을 당하는 등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물론 사산 왕조 역시 나중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반격으로 대패를 당하고 점령한 로마 제국의 영토들을 다시 토해냈다. 이후에도 로마 제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 간의 전쟁은 여러 차례 계속되었으며, 무려 7세기까지 이어지다가 둘 다 사이좋게 [[이슬람 제국]]에게 짓밟히고, 사산조 페르시아는 아예 멸망하게 되면서 끝이 났다. 하여튼 카라칼라의 공격은 분명 로마 제국의 최대 경쟁자이면서도 공생과 평화적인 해결이 가능했던 파르티아 제국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그 결과 더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는 좋지 못한 것이었다. 이처럼 장기적이고 대국적인 안목없이 당장의 전과와 승리에만 급급했던 행동이 승리는 고사하고 쌍방 lose-lose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 니시비스 전투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의의일 것이다. 한마디로 [[승자없는 싸움]]이었던 셈이다. [[분류:로마-파르티아 전쟁]][[분류:지상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